생명의 법, 지구법

김영준(변호사)

  1. 생명의 속성 – 연결성

생명의 속성은 무엇일까? 생명의 가장 큰 속성은 연결성일 것이다. 생명은 환경 속에서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생명을 유지한다. 다음은 토마스베리의 우주이야기의 일부이다.

우주 생성은 친교로써 조직화된다. 존재한다는 것은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관계는 존재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태초의 입자들이 분출되던 바로 그 순간에 전체 우주 안에서 모든 입자들은 다른 입자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후 미래의 어떤 순간에도 우주에 있는 존재들이 분리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하나의 입자에 있어서 고립이라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은하에서도 역시, 은하들 간의 관계는 확실히 존재하는 사실이다. 모든 은하는 우주에 있는 수천억 개의 은하들과 직접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래서 한 은하의 운명이 우주에 있는 각각의 다른 은하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시간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다른 존재들이 없을 때 그 존재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존재한다는 것은 서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성과 연결성은 여러 가지 측면이 가능할 것이다. 땅과 함께 살아가는 것 역시 이러한 관계성과 연결성을 회복하는 것이리라.

2. 사회와 자연의 관계성과 연결성

이러한 여러 관계성과 연결성의 회복으로 “땅과 함께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관계성과 연결성 중에서 중요한 지점은 아마도 사회와 자연의 관계성과 연결성일 것이다. 사회적 맥락과 자연적 맥락을 연결하는 것은 여러 층위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땅과 함께 살아가기의 의미일 것이며,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생명의 법, 지구법이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3. 생명의 법, 지구법

지구법은 위에 인용한 토마스베리의 사상을 바탕으로 소수의 변호사들이 구성해 낸 법이론이다. <야생의 법>을 저술한 코막 컬리넌 역시 이러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변호사이다. 다음은 이 책 165쪽부터의 내용이다.

지구중심의 관점에서 나오는 권리 문제에 관한 토마스 베리의 견해는 <권리의 기원과 분화 그리고 역할The Origin, Differentiation and Role of Rights>에 명확하면서도 간결하게 기술돼 있다. 지구 공동체의 다른 성원들도 권리를 가진다는 명제를 정당화하는 논증은 내겐 우아하면서도 설득력 있어 보인다.

본질적으로 모든 존재들의 권리는 가장 근본 원천인 우주로부터 도출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우주는 “객체들의 집합이 아닌 주체들의 친교a communion of subjects and not a collection of objects”이므로, 우주의 모든 성원은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주체이고, 따라서, 인간들이 권리를 갖는 만큼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지구는 주체들의 친교이고, 권리는 인간의 법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기원하는 데서 기원한다는 베리의 명제를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지구 공동체의 다른 성원들 또한 권리를 가진다고 승인하지 않으면서 인간은 인권을 가진다고 주장할 수 없다. 

우리가 인간과 법인이 가령 강이나 토지와 관계에서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한다면, 주체로서 강이나 토지도 인간과의 관계에서 권리를 가져야 함을 또한 인정해야 한다. 

권리는 관계라는 맥락 내에서 존재한다. 법적 관계 속에서 한 사람이 갖는 어떤 권리는 다른 사람이 부담하는 의무와 상응한다. 

지구 시스템 내에서 전체로서 지구의 안녕이 다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지구 생물권의 구성요소들은 단 하나 예외 없이 지구 생태계 내에서만 생존 가능하다. 이는 지구 공동체의 성원들 저마다의 안녕이 전체로서 지구의 안녕에 의존하며, 또 이것에 우선할 수 없음을 뜻한다. 따라서 지구법학의 제1원칙은 개인이나 인간 사회의 이익보다 전체 공동체의 생존과 건강, 그리고 번영에 우선권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 원칙의 실현이 사실상 인간의 장기적 이익을 보장하는 가장 나은 방법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구 공동체의 일원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우리는 마치 그 반대가 진실인 것처럼 믿고 또 그렇게 행동해왔다. 

우리 인간이 지구에 보여야 하는 ‘충실함’은 그러므로 세포가 몸에 보여야 하는 그것에 비유할 수 있다. 세포의 의무는 세포의 진화 목적인 기능을 실행하는 것이고 몸 전체의 건강에 이바지하는 방식으로 계속 활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멈춘다면 세포는 죽거나 암으로 변한다. 이와 유사하게 지구 시스템의 기능에서 우리의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고 지구의 통합성 내지 전체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행위하는 것이 지구에 지고 있는 우리의 의무다.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 종을 지탱시키는 지구 공동체를 배반하는 것이다. 

지구(그리고 실제로 우주)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지구는 상호관계의 방대한 네트워크이자,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물리학자는 산, 강, 인간, 백합과 잠자리는 일정 기간 동안 특정한 방식으로 자신을 재배열하는, 동일한 아원자 입자들로 구성된 지구의 다른 측면들이라고 말한다.

토마스 베리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지구 공동체의 모든 구성요소는 세 가지 권리를 갖는다. 존재할 권리, 서식지에 대한 권리 그리고 지구 공동체가 부단히 새로워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종합하면, 이러한 ‘권리들’은 다른 성원들과 전체로서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공동체의 각 성원들의 역할과 기능의 본질을 기술하고 있다. 

권리의 기원과 분화 그리고 역할

  1. 존재가 기원하는 곳에서 권리가 발생한다.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권리를 결정한다. 
  2. 현상 질서 속에서 우주를 넘어서는 존재의 맥락은 없기에 우주는 자기 준거적 존재로, 자신의 활동 속에서 스스로 규범을 만든다. 이러한 우주는 파생하는 모든 존재양태의 존재와 활동에서 일차적인 준거가 된다.
  3. 우주는 객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주체들의 친교다. 주체로서 우주의 모든 성원들은 권리를 가질 수 있다. 
  4. 행성 지구 위의 자연계는 인간의 권리와 동일한 연원으로부터 권리를 갖는다. 그 권리는 우주로부터 존재에게 주어진 것이다.
  5. 지구 공동체의 모든 성원들은 세 가지 권리를 갖는다. 존재할 권리, 거주할 권리, 지구 공동체의 공진화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권리가 그것이다.
  6. 모든 권리는 특정 종에 국한된 제한적인 것이다. 강은 강의 권리를 갖는다. 새는 새의 권리를 갖는다. 곤충은 곤충의 권리를 갖는다. 인간은 인간의 권리를 갖는다. 권리의 차이는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이다. 나무나 물고기에 곤충의 권리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7. 인간의 권리는 다른 존재양식이 자연 상태로 존재할 권리를 파기할 수 없다. 인간의 재산권은 절대적이지 않다. 재산권은 단지 특정한 인간 “소유자”와 특정한 일부 “재산” 간의, 양쪽 모두의 이익을 위한 특별한 관계일 뿐이다.
  8. 종은 개체 형태나 양, 우마나 물고기 떼 등과 같은 집단 형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권리는 단순히 일반적인 방식으로 종이 아니라, 개체나 집단과 관련된다.
  9. 여기서 제시된 권리들은 지구 공동체의 다양한 성원들이 다른 성원들에 대해 갖는 관계를 수립한다. 행성 지구는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상호 밀절하게 연결된 하나의 공동체다. 지구 공동체의 모든 성원들은 직간접적으로 스스로의 생존에 필요한 영양 공급과 조력, 지원을 위해 지구 공동체의 다른 성원들에게 의존한다. 포식자와 피식자 관계를 포함하는 이 상호 영양 공급은 지구의 각 요소가 포괄적인 공동체 내에서 갖는 역할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10. 인간은 특별한 방식으로 자연 세계를 필요로 할 뿐 아니라 자연 세계에 접근할 권리도 갖는다. 이는 물리적 요구는 물론 인간의 지성이 요구하는 경이로움과 인간의 상상력이 요구하는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의 감정이 요구하는 친밀성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권리는 사회적 제도이다. 이러한 사회적 제도가 어떻게 존재적 혹은 우주적 혹은 지구적 혹은 자연적 맥락을 반영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고, 이러한 측면에서 제시된 것이 지구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적 맥락을 반영하는 사회적 제도인 지구법은, 이러한 면에서 생명의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자연을 통해, 자연과 함께 경이로움, 아름다움, 친밀성을 느낀다. 제도는, 법은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 속성을 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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